1년간 시중금리 급등 누적 실물·금융 취약성 부각
미국·한국 금융시스템 전반으로 전염 위험은 제한적
1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있는 실리콘밸리은행 본사의 닫힌 출입문에 붙은 공고문을 누군가 읽고 있다. 샌타클래라/UPI 연합뉴스
유동성 부족과 지급불능 위기로 지난 10일(현지시각) 전격 파산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가 세계 경제 전반의 실물·금융 취약성을 부각시키고, 은행 산업 내부에 숨겨져 온 위험을 수면 위로 떠올리게 하는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다만 파산한 곳은 미국 내 16위 은행으로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와 같은 금융시스템 전반의 위험으로 번질 가능성은 아직 낮다는 평가다. 미국 연방준비제도 통화정책에 줄 영향도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 정부는 더 큰 은행들의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번에 파산 절차에 들어간 실리콘밸리은행은 자산 규모가 지난해 말 기준 2090억달러로 미국 내 16위 은행이다. 12일 <블룸버그>는 “이번 사태는 코로나19 이후 미국 내 첫 번째 은행 파산으로, 경기침체가 도래했다는 첫 번째 신호일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다른 중소형 은행까지 연쇄 불안에 휩싸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투자자문사인 웰런글로벌어드바이저는 “다음주에 유동성 불안을 겪는 은행이 또 나타날 수 있다”며 “일부 취약 은행은 예금 이탈이 가속화하면 불가피하게 보유 증권(미 국채 등)을 매각해야하고, 이에 따른 채권 손실 확대가 은행 산업 전반에 확산될 우려도 있다”고 했다. 신용평가기관 에스앤피(S&P)는 “중소은행은 이번 사태로 글로벌 시장에서 자금조달에 더욱 어려움을 겪게 돼 예금자 이탈 확산이 우려된다”고 전망했다. 실리콘밸리은행처럼 일부 해외 은행들도 그동안 채권금리 급등(채권가격 하락)으로 보유 채권자산에서 대규모 평가 손실을 내고 있었는데, 이번 사태가 채권 손실 우려를 더 증폭시킬 것이라는 얘기다. 취약한 미국 중소형 은행 등이 공매도 투자자들의 공격 목표가 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실리콘밸리은행 파산으로 가장 먼저 피해를 입을 곳은 미국 스타트업들이다. 미국 전역에서 벤처캐피털이 지원하는 신생기업 중 절반 가량이 실리콘밸리은행과 거래해왔고, 미 증시에 상장된 미국 테크 및 의료 벤처기업 중 44%(2022년)가 실리콘밸리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제공받고 있다.
그러나 이 여파가 미국 금융시스템 전반의 위험으로 확산될 가능성은 아직 낮은 것으로 보인다. 실리콘밸리은행은 고금리 예금 구조에서 이자비용 지출액이 과도했던 특수성이 있어 파산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리먼브러더스 사태와 같은 광범위한 은행 위기로 확대될 가능성은 아직 크지 않다”며 “미국 경제를 강타하는 은행 위기를 촉발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금융시장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미 연준의 통화정책 방향에도 영향을 주는 것 아니냐는 예상이 나오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더 규모가 큰 은행들이 유동성 문제에 직면하지 않는 한 연준의 통화긴축 기조는 유지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한 상황이다.
한국 정부도 이날 회의를 열고 실리콘밸리은행 사태의 영향을 점검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린 회의에서는 “아직까지 이 사태가 미국 은행 등 금융권 전반의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시각이 우세하지만, 글로벌 금융긴축으로 시장 변동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국내외 금융시장, 실물경제 등에 대한 영향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정부와 관계기관은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필요시 신속히 대응하겠다”는 얘기가 오갔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실리콘밸리은행 사태는 단순히 주가·금리·환율이 급변동하는 게 아니라 실물경제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는 이벤트가 발생한 것이라 유심히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실리콘밸리은행에 대한 국내 은행 익스포져(위험노출액)는 미미한 수준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의 공시 누리집을 보면 국민연금이 보유 중인 실리콘밸리파이낸셜그룹(실리콘밸리은행의 모기업) 주식은 지난해 말 기준 10만주가량(평가 가치 2319만달러)이다.
조계완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최하얀 기자 [email protected] 박종오 기자 [email protected] 고한솔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