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사망 경향신문 1면
우리 사회에는 포비아(phobia)라는 유령이 돌아다닙니다. 포비아는 특정한 물체나 상황을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증상입니다. 높은 곳에 있을 때 무서움을 느끼는 고소공포증, 밀폐된 곳에서 무서움을 느끼는 폐소공포증, 트인 장소나 공공장소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광장공포증도 있습니다. 광장공포증이 심한 사람은 집밖으로 나가기를 매우 꺼려합니다.
군중을 두려워하는 대중공포증이 심하면 남들 앞에 섰을 때 얼굴이 심하게 붉어지고 목소리는 몰론 다리가 떨리기도 합니다. 학교 가기를 싫어하는 학교공포증은 경쟁이 치열한 교육환경 적응이 힘들어 나타난 사회병리현상입니다. 포비아가 문제인 것은 단순한 심리적 경향에 머물지 않고 사회를 갈라놓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종북좌빨 포비아’입니다. 보수진영이 진보진영을 몰아붙이는 종북좌빨이라는 표현은 북한(김일성과 김정일, 그리고 김정은)을 추종하는 빨갱이로 낙인찍는 주홍글씨가 되었습니다. 진보정치세력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 복지, 분배, 형평, 정의,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이야기하면 종북좌빨로 몰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보수진영의 정치적 공세가 먹혀 들어가는 건 좌익공포증이 아직도 힘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통성 없는 독재정권이 정치적 반대세력을 탄압하는데 동원했던 레드 콤플렉스가 위력은 다소 줄었지만 아직 살아 있는 겁니다. 달리 말하면 3년 동안 수백만명이 죽고 다친 한국전쟁의 아픈 기억이 아직도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겁니다.
‘종북좌빨 포비아’로 볼 수 있는 조문발언파동이 1994년 7월 15일 오늘 일어났습니다. 7월 9일 북한 김일성 주석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습니다. 7월 25일부터 27일까지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던 남북정상회담이 무산되었습니다. 정부는 김일성 사망 직후 열린 긴급 국가안보회의에서 조의 표명과 조문 행위에 대한 사법처리 방침을 분명히 했습니다.
김일성이 “동족상잔의 한국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라는 부정적 여론에 편승해 김영삼 정부는 강경하게 조문을 막았습니다. 조문에 대한 어떠한 발언도 모두 김일성 추종세력으로 규정한다고 밝혔습니다. 일부 재야단체들이 정부 방침에 반대하며 조문단 파견 의사를 밝히면서 조문의 찬반과 가부를 두고 극심한 갈등이 빚어졌습니다.
김일성 호칭을 놓고도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전까지는 김일성이라고 호칭 없이 불렀으나 6월 20일 지미 카터 전 미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제의하고 6월 28일 남북 대표가 실무접촉을 하면서 이름 뒤에 주석이라는 호칭을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김일성이 사망하자 호칭 문제가 불거져 다시 호칭 없이 김일성으로 불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7월 15일 국회 정보위원회가 열렸습니다. 이부영 민주당 의원이 화해와 신뢰구축의 방편으로 정부가 김일성 주석 조문단 파견할 의향이 없는지 질의했습니다. 민자당 의원들이 김일성 죽음 애도라고 공격했습니다. 남북관계 개선과 민족화해 차원에서 조문단 파견의 필요성이 합리적으로 논의될 여지는 전혀 없었습니다.
미-일-러-중 등이 김정일 체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교두보를 만들려고 하는데 우리만 대북 영향력 확보에 뒤지면 안 된다고 생각해 조문외교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라는 이부영 의원의 해명은 묵살되었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던 상황에서 조의를 표하고 조문하는 것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은 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7월 18일 김영삼 대통령과 대학총장 오찬간담회에서 박홍 서강대 총장이 조문 주장에 대해 ‘김정일 주사파 배후설’을 제기했습니다. 7월 19일 안기부가 조명철 김일성대학 교수의 귀순을 발표했습니다. 외무부는 한국전쟁을 김일성이 일으켰다는 내용의 소련 문서들을 공개했습니다. 종북좌빨 포비아가 합리적이고 성숙한 토론을 막아버린 것입니다.